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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제 341호 이순신 장검
    국 보 2024. 3. 23. 08:30

    국보 제 341호 이순신 장검 (李舜臣 長劍)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298-1, 현충사
    지정일 : 2023년 08월 24일

    ‘이순신 장검’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된 도검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칼자루는 나무에 어피를 감싸고 붉은 칠을 하였으며, 일부분만 직사각형의 금속판을 댄 후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고 끈 위에 검은 칠을 하여 칼자루를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외날의 칼날은 칼등 방향으로 조금 휘어 있으며, 칼날의 단면은 칼날의 위쪽과 아래쪽의 각도를 보았을 때 가장 보편적인 육각도(六角刀) 단면을 보이고 있다.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과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기록은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칼집에는 패용할 수 있도록 가죽끈을 매달았다.

    이 도검은 슴베에 제작시기와 제작자 기록이 새겨져 있다. 슴베는 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으로 칼자루와 칼날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부분인데 일제강점기의 유리건판 사진을 보면 두 자루 모두 슴베에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동일한 내용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검’은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이며 전통적인 조선식 환도에 해당한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기법으로 장식한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명문과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여기에 당시 도검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도검의 요소가 도입되어 적용되었는데 슴베와 칼자루를 결합했을 때 구멍을 맞추고 못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목정혈(目釘穴), 칼자루를 단단하게 쥘 수 있도록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 칼날이 휘어진 곡률이나 혈조(血漕, 피홈)를 넣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이순신 장검’은 다음의 이유에서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다. 첫째, 『이충무공전서』의 기록과 일치하는 칼날에 새겨진 시구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가치가 탁월하다. 둘째, 칼자루 속 슴베에 1594년 태귀련, 이무생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하다. 셋째, 군사사 분야에 있어서도 조선 도검의 전통 제작기법에 일본의 제작기법이 유입되어 적용된 양상을 밝힐 수 있으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넷째, 칼날의 예리함과 견고함, 칼날에 새긴 명문 및 물결무늬 선각장식의 기술성, 칼자루 칼집의 테와 고리를 장식한 은입사기법, 가죽・금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제작기술과 예술성 역시 우수하고 완성도가 높다. 마지막으로, 제작연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출처 : 문화재청)

     

    사진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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