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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문, 십자가의 권능믿 음/자비의 희년 2016. 3. 22. 08:30
보편교회 자비의 특별 희년 기념 '하느님 자비에 대한 묵상'
제5주제
"마지막 관문, 십자가의 권능"
그릇된 하느님 상과 작별을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관문은 하느님의 권능에 관한 오해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고백할 때 어떤 분을 떠올립니까? 슈퍼맨과 같은, 요술램프와 같은, 우리가 원할 때마다 어디선가 날아와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마술과 같은 힘을 가지신 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와는 반대로 성경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 안에서 전능하신 분으로 드러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집 떠난 작은아들이 돌아을 때 아버지가 멀리서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루카 15,20)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표현은 복음서 곳곳에 등장하는데, 가령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신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마태 9,36; 마르 6,34)이었다고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도 이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루카 10,33). 우리말로 번역한 이 '가엾은 마음'은 원래 ‘어머니의 태속이 쓰리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바로 그 표현을 통해 복음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분은 강도를 당한 사람의 참된 이웃이 되어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웃의 슬픔과 쓰라린 고통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하신 자비 가득한 분입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기가 꺾인 이들, 죄와 악의 세력 아래 허덕이는 이들에게 다가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을 전해주신 분입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우리 대신 죄와 벌을 젊어지고 죽음을 당하신 분 우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온 삶과 죽음을 통해 인간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셨습니다.
신앙은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지혜’와‘힘'(1코린 1,22-25)을 발견해가는 여정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제자들이 걸었던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권력'으로써 나라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줄 군사적, 정치적 혁명가였으며, 놀라운 힘을 지닌 예수님에게서 새로운 나라가 실현될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참조: 루카 24,19-21). 그런데 그분은 십자가라는 처참한 형벌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스승의 죽음으로 그들의 인간적 꿈과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하느님 사랑의 권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목격하고, 부활하여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신 스승을 만나면서,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후 모든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스승의 모든 말씀과 가르침과 업적을 온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결국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남겨 주신 이 사랑의 계명을 완성시킨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사랑하는 벗을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분의 사랑 앞에서 죽음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하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용서하는 사랑 앞에서 악의 세력은 발붙일 곳조차 없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한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 사랑이 죽음까지도 어쩌지 못하는, 모든 것을 견디어내며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참조: 1코린 13,7-8) 강한 사랑임을 깨닫도록 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인간을 향한 자비로운 하느님의 얼굴이, 하느님 사랑이 지닌 권능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무력으로 남을 제압하는 힘이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 두 팔 벌림으로, 상처 받음으로, 집착하지 않는 포기로 인간의 이기심과 폐쇄성, 원한의 뿌리까지 태워버리는 사랑의 힘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다만 멀리서 관상해야 할 것만은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녀들인 우리가 당신의 그 자비를 닮기를 바라십니다. 당신 자비의 화신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눈 으로 우리 자신을, 이웃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삶 속에 투신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자신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에게 다가가 보살피라고 하십니다. 자비의 희년을 통해 ‘선교하는 제자 공동체'로 새롭게 발돋움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 수원가톨릭대학교 한민택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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