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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아버지에게로믿 음/자비의 희년 2016. 3. 15. 08:30
보편교회 자비의 특별 희년 기념 '하느님 자비에 대한 묵상'
제4주제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루카 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며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우리에게 좋은 묵상거리를 제공합니다. 곤경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함으로써 그분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영적 여정을 그려주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나누어달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챙겨 먼 고장으로 떠나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허비합니다. 가산을 거의 탕진할 무렵 그곳에 기근까지 들어 그는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장 주민 집에서 돼지 치는 일이라도 해서 배를 채우려고 하였지만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돌아오는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가엾은 마음으로 그를 반갑게 맞아주며 큰 잔치를 벌입니다.
과연 무엇이 작은 아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한 것일까요? 다음 말씀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루카 15.16). 그는 분명 돼지들이 먹는 열매로 배를 채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배고픔은 그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주지 않았다…, 누군가 줄 때만 받을 수 있는 것, 강제로 빼앗거나 소유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랑이 아닐까요? 작은 아들이 느꼈던 배고픔의 정체는 바로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부자였을 때 많은 사람이 그에게 친구처럼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궁핍하게 되었을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배고픔과 죽음의 위협, 고독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깊은 것에서 솟아오르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느꼈으며, 그제야 전에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던 충만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많은 품팔이꾼들에게도 남아 돌 만큼 넘치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를 제정신 들게 하였고 아버지의 집 으로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그는 변하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엾은 마음‘으로 자신을 껴안고 입을 맞추시는 아버지의 품에서 그는 자신을 살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합니다.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고, 조건 없이 받아주는 사랑, 끝까지 기다려주는 사랑, 바로 그 사랑이 자신을 살리고 살아갈 의미와 목적을 준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온전히 자유로워졌습니다. 처음에 그가 누리던 자유는 방종임을 깨달았으며, 자유는 아낌없이 주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녀'로서 누리는 진정한 자유였습니다. 이제 그는 아버지의 진정 자유로운 아들이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자유로운 자녀가 되는 것입니디. 작은 아들은 비록 배은망덕했지만 시련을 겪으며 아버지의 자유로운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 자유는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알아보고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큰 아들은 아버지의 자비로운 처사가 못마땅해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루카 15,29).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었지만, 스스로를 '종'처럼 여기며 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두 아들의 대조를 통해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속합니까? 작은 아들입니까, 큰 아들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자녀입니까? 아니면 스스로를 종처럼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신앙을 하느님 사랑에 자발적인 사랑의 응답으로 보답하며 기쁨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의무로 부과된 짐처럼 힘겹게 이고 살아갑니까?
변화의 실마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에 대한 자각이었습니다. 자비로운 아버지께로부터 사랑받는 소중한 자녀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 자각이 작은 아들로 하여금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회개란 자녀로서의 품위에 걸맞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돼지우리와 같은 삶에서 헤어 나오고 싶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서서 말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자, 아버지께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늘 그렇게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고 계십니다. 우리를 당신 품에 안으시고 입을 맞추어 주시며 손수 마련하신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삶의 시련을 겪으며 우리 안에 자리하는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만났습니까? 그 열망의 대상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하였습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노예와 같은 삶에 종지부를 찍고 자녀다운 품위를 회복하는 삶을 발견하였습니까? 우리는 그 길의 어디쯤에 와 있습니까?
- 수원가톨릭대학교 한민택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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