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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37호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 보 2021. 12. 21. 08:30
국보 제 37호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慶州 皇福寺址 三層石塔)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03번지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통일신라 신문왕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며,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이나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기단의 양식은 두 탑과 거의 비슷하나, 기단의 각 면에 새겨진 가운데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어 있다. 탑신부도 여러개의 돌로 짜맞추는 대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어, 달라진 석탑의 양식을 보여준다. 지붕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효소왕 1년(692)에 세워진 탑으로,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5년만인 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다시 탑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 1942년 착수된 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그중 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의 성격이 기록되어 있어 탑의 건립 연대와 조성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전기 석탑양식의 변화과정이 잘 담겨져 있어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211019)
크 기 : 現高(현고) 7.3m 基檀幅(기단폭) 4.2m
재 료 : 화강석
시 대 : 통일 신라시대
규모에 있어 감은사지 석탑이나 고선사지 석탑보다 低少(저소)해 졌으며 塔身部(탑신부)를 單一石(단일석)으로 짜올림으로 小石材(소석재)를 利用(이용)하여 結構(결구)하는 수법에서 벗어나 塊伡性(귀거성 - 덩어리)을 보여주고 하층 기단면석의 撑柱(탱주)는 二柱(이주)로 줄어 들고 있어 우리나라 석탑 건축 수법의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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