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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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무골 교우촌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5. 2. 26. 08:30
불무골 교우촌 주 소: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흥림리 산 84-1 불무골은 최양업 신부가 1857년 9월에 두 통의 서한을 작성한 곳이다. 마카오 신학교의 스승이었던 르그레즈와 신부와 리브와 신부에게 각각 올린 서한에는 사목보고와 더불어 조선의 박해 상황과 이에 따른 최양업 신부의 노고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사목 활동들의 내용이 소상히 적혀 있다. (1857년 9월 14일 자, 9월 15일 자 편지) 현 주소지 일대가 교우촌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 희망의 순례자) (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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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푸리 교우촌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5. 2. 12. 08:30
접푸리 교우촌 주 소 : 인천광역시 서구 도요지로 54, 녹청자 박물관 접푸리 교우촌은 최앙업 신부가 한국인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다. 김화읍 김성(금성)에서 접푸리로 다시 이사를 하면서 집안 살림은 점점 어려워졌지만 최양업 신부와 그 가족들은 곳곳하게 신앙을 지켜 갔다. 1836년 2월, 접푸리에서 한국인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 신부는 같은 해 12월 유학을 떠나게 된다. 최양업 신부 가족은 접푸리에서 3년(1835~1838년)을 살다가 수리산으로 이주한다.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는 않으나 현재 녹청자 박물관이 있는 일대가 접푸리 교우촌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진다. (출처 : 희망의 순례자) (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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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정기 희년 ‘희망의 순례자들’ 선포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4. 12. 29. 09:00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희망의 순례자들(Pilgrims of Hope)’이라는 주제로 2025년 정기 희년을 공식 선포하셨습니다. 희년은 올해 12월 24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성문 개방을 시작으로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문을 닫는 것으로 끝납니다. 내사원은 이 기간에 지침에 따라 기도하는 모든 신자는, 자기의 모든 죄에 대한 사죄와 용서가 결부된 전대사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신자들은 ‘희년을 위한 거룩한 장소라면 어느 곳이든’ 순례하고 그곳에서 봉헌되는 미사에 참여하면 됩니다. 또한 주교좌 성당 또는 교구 직권자가 지정한 성당이나 순례지, 국제 또는 국가 순례지 가운데 적어도 한 곳을 순례하면 됩니다. 개인 또는 단체로 희년을 위한 장소를 경건한 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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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마을 (서지 교우촌)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4. 12. 11. 08:30
서지마을 (서지 교우촌) 주 소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343 서지마을은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등장하는 최양업 신부의 먼 친척인 복자 최해성 요한이 살던 교우촌이다. 최해성은 서지마을에 작은 교우촌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착한 표양으로 모든 이의 귀감이 되었다. 최양업 신부는 극도로 비참한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변치 않는 인내심을 발휘했고, 이웃들에게 베푸는 삶에 충실했던 순교자 최해성의 이야기를 그의 서신에서 전하고 있다. (출처 : 희망의 순례자) 십자가의 길 ☞ (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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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성지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4. 11. 20. 08:30
봉암성지 주 소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봉현리 318-3 봉암성지의 방축골과 계마대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신앙생활을 이어 온 곳이다. 최양업 신부는 사목 순방 중 방축골과 계마대에 들러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이곳에 살던 신자 김백심의 아들 사도요한을 신학생으로 선발했다. 김 사도요한은 배티 신학교를 거쳐 말레이시아 페낭의 신학교에서 학업을 이어 갔으나 조선에 돌아 온 후에 환속하여, 사제가 되지는 못했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 김백심, 김 사도요한을 포함하여 총 6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출처 : 희망의 순례자) 십자가의 길 ☞ 십자가의 길 ☞ (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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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골 교우촌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4. 11. 5. 08:30
한덕골 교우촌 ➽ - 1 주 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619-1 최양업 신부는 1849년 4월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통해서 조선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후 충청도로 이동하여 페레올 주교에게 귀국 보고를 한 후, 양친의 순교 이후 넷째 동생 최신정을 보살펴 주던 작은아버지 최영겸 베드로가 살던 이곳 한덕골 교우촌을 방문하여 동생들과 만나서 며칠간 머무르며 형제들을 위로했다. (출처 : 희망의 순례자) (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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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들 교우촌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4. 10. 22. 08:30
진밭들 교우촌 주 소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두지진밭들길 101-13 최양업 신부는 진밭들 교우촌에 사목차 방문하여 고해성사와 보례, 15명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하였는데 갑자기 포졸들의 습격을 받아 신자들과 함께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산속으로 피신하여 바위와 가시덤불 사이를 헤매었다는 이야기가 1856년 9월 13일 자 최양업 신부의 서신으로 전해진다. 진밭들 교우촌은 현 주소지인 두지진밭들길 일대였을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그 일대가 밭인 까닭에 진산 성지성당을 순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출처 : 희망의 순례자) (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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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첫 사목성지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4. 10. 15. 08:30
김대건 신부 첫 사목성지 주 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홍교리 101-1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첫성무를 수행한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조선인 교우 11명과 함께 10월 12일 강경 포구 인근의 외딴 곳에 상륙하였다. 김신부는 교우 구순오의 집에 한 달 남짓 머물며 고국에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강경은 페레올 주교가 2개월 이상 은거하며 자신의 교구에서 처음으로 교구장의 직무를 수행한 장소이다. (2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