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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
주 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홈 피 : http://www.cdg.go.kr/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고 광해군 때에 다시 짓는 과정에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왕실정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왕실정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돈화문(敦化門) - 보물 제 383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이 즉위한 이듬해인 1609년에 재건되었다.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내병조(內兵曺) - '궁궐 안에 있는 병조'란 뜻으로 1999년 복원되어 현재 창덕궁 관리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 궐내각사
궐내각사 왕과 왕실을 보좌하는 궐내 관청으로 지금 있는 건물들은 2000~2004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규장각(奎章閣) - 정조가 세운 왕실 도서관
운한문(雲漢門)
봉모당(奉謨堂) - 역대 선왕들의 유품을 보관하는 전각
책고(冊庫) - 책을 보관하던 곳
검서청(檢書廳) - 검서관(서적을 점검)들이 당직을 서던 규장각의 부속건물
구 선원전(舊 璿源殿) - 역대 선왕들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보물 제 817호이다.
억석루(憶昔樓) - 내의원(內醫院)에 속하는 건물로 억석은 '옛날을 생긱한다'는 뜻이다.
양지당(養志堂) - 임금이 선원전에서 제사를 모시기 전에 잠시 머물던 곳
약방(藥房) - 내의원(內醫院)에 속하는 의약을 담당하던 곳
옥당(玉堂) -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으로 궁궐의 서적을 관장하던 곳
진선문(進善門) - 창덕궁의 중문(中門)이다.
인정문(仁政門) -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으로 보물 제 813호이다.
인정전(仁政殿) - 국보 제 225호 ☞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의 즉위식, 조회, 외국사신의 접견 등이 이루어지던 정무 공간이다.
숙장문(肅章門) - 이곳을 통해 내전(內殿)으로 갈 수 있다.
선전문(宣政門) - 선정전(宣政殿)의 정문(正門)
선정전(宣政殿) - 임금의 집무실로 쓰인 곳으로 보물 제 814호이다.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격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희정당(熙政堂) - 침전(寢殿)에서 편전(便殿)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으로 보물 제 815호이다.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다.
대조전(大造殿) - 보물 제 816호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
흥복헌(興福軒) - 1910년 경술년(庚戌年) 8월 22일 조선시대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려 경술국치(庚戌國恥)가 결정된 비극적 역사가 담겨 있는 곳
대조전 화계(花階)
성정각(誠正閣) - 세자가 거주했던 동궁(東宮)에 속한 전각으로 세자가 학문을 익히던 곳
관물헌(觀物軒) - 고종21년(1884년) 김옥균(金玉均)등 개화당이 일으킨 갑신정변(甲申政變)의 현장으로 현판의 글씨 집희(緝熙)는 고종이 13세 때 쓴 어필이라 전해진다.
조화어약(調和御藥) - 임금의 약을 조제하던 곳
보호성궁(保護聖躬) - 임금의 몸을 보살피던 곳
후원(後苑)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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