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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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정암사조계종/그외 말사 2021. 6. 10. 08:30
태백산 정암사 (太白山 淨巖寺) 주 소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2 홈 피 : http://www.jungamsa.com/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으며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오대산 중대(中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의 적멸보궁과 함께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금강산 건봉사(乾鳳寺), 태조산 도리사(桃李寺), 비슬산 용연사(龍淵寺)를 합쳐 8대 적멸보궁이라고도 한다. 일주문(一柱門) 포대화상(布袋和尙)육화정사(六和精舍) 적묵당(寂默堂)범종루(梵鐘樓) 적멸보궁(寂滅寶宮)임시법당 문수전(文殊殿) 함백당(咸白堂) 관음전(觀音殿) 삼성각(三聖閣) 자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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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332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국 보 2021. 6. 5. 08:30
국보 제 332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旌善 淨岩寺 水瑪瑙塔)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2, 정암사 지정일 : 2020년 06월 25일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있는 정암사는 「삼국유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받아 귀국한 후,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임. 정암사에는 수마노탑을 바라보는 자리에 적멸보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통도사, 오대산 중대, 법흥사,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음.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은과 함께 7보석 중의 하나인 마노(瑪瑙)와 관련이 있으며,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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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산 수타사조계종/그외 말사 2021. 5. 19. 08:30
공작산 수타사 (孔雀山 壽陀寺) 주 소 :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9홈 피 : http://www.sutasa.org/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성덕왕 7년(708년)에 우적산 일월사(牛跡山 日月寺)라 창건되어 선조 2년(1568년)에 현위치로 이건(移建)하면서 수타사라 하였다. 부도전(浮屠殿)봉황문(鳳凰門) 범종각(梵鐘閣)수타사 동종(壽陀寺 銅鐘) - 보물 제 11-3호 흥회루(興懷樓)백연당(白連堂)대적광전(大寂光殿) 지장전(地藏殿) 삼성각(三聖閣) 원통보전(圓通寶殿) 보장각(寶藏閣 - 성보박물관)공양간(供養間)심우산방(尋牛山房)장판각(藏板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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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로 성당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20. 12. 16. 08:30
소양로 성당 - 2 ➽ - 1 살신성인 기념 성당인 소양로 성당은 1950년 1월 5일 죽림동 성당에서 분가되었으며, 한국 전쟁에서 순교한 고 안토니(Anthony collier) 신부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성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신자들에게도 피신하라고 권고하며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는 6월 27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공지천변으로 끌려가면서 함께 잡혔던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에게 총격이 있으면 얼른 엎드리라고 이야기하였다. 마침내 총격이 시작되자 고 신부는 그를끌어안고 넘어져, 자신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다른 이를 살리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현 성당은 1956년에지어졌다. 당시 교구장 구인란(具仁蘭, Thomas F. Quinlan)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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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20. 12. 9. 08:30
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 - 2 ➽ - 1 주교관은 춘천교구장 주교의 거처이자 선교사들이 교구 일을 돕거나 기거하는 거점으로 강원도 지역을 담당하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1958년에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당시의 전형적인 외국인 선교회 풍으로 지었는데, 유별나게 서향으로 세운 것은 햇빛이 아쉬운 아일랜드 풍습의 영향으로 보인다. 6.25 전쟁이 끝난 뒤, 포격으로 피해가 많았던 춘천에 아일랜드 풍으로 세워진 건물로서,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 건축사적 가치를 가지고있다. 춘천교구 신앙교육의 요람인 교육원은 1958년 주교관이 지어진 후 건축이 시작되어 이듬해에 주교관과 같은 분위기로 지어졌다. 교육원은 당시 교구장인 구 토마스 주교의 뜻에 따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들에게 신앙을 심기 위한 전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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