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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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국 보 2018. 12. 29. 08:30
국보 제 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지정일 : 2011년 11월 28일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또한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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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 보 2018. 12. 22. 08:30
국보 제 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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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 보 2018. 12. 15. 08:30
국보 제 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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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국 보 2018. 12. 8. 08:30
국보 제 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榮州 黑石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 흑석사지정일 : 1993년 11월 05일 흑석사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 몸체 안에서 많은 유물들을 발견되었다. 이 목조불상은 함께 발견된 기록들에 의해 조선 세조 4년(1458)에 법천사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로 조성된 것임이 밝혀졌다.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육계와 팔, 배 주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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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한 고택지믿 음/성지순례(167곳) 2016. 7. 8. 08:30
홍유한 고택지 주 소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 322-5 관 할 : 휴천동 성당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평신도 가운데 신앙을 위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간 사람)로 알려져 있는 농은 홍유한은 1750년경부터 “천주실의”와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바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1757년 충청도 예산으로 이주하여 18년간 “칠극”에 따른 천주교의 수계생활에 정진하였다. 1775년 그는 더 깊은 믿음을 위해 경상북도 소백산 밑의 단산면 구구리로 들어와 고행과 절식, 기도와 묵상으로 1785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영조 2년(1726년) 홍유한의 조부인 홍중명이 사헌부 지평으로 증직되어 하사 받은 현판 * 증직(贈職) : 공신, 충신, 효자등에게 죽은 뒤에 벼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