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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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량 순교 현양비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9. 10. 1. 08:30
김기량 순교 현양비 - 2 (190820) * 김기량 순교 현양비 - 3 ➽ - 3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 함덕리 출신으로 소규모 무역상이었다, 그는 1857년 초 제주 근해를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 한달가량 표류하다가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에 인도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조선 신학생 이만돌 바울리노에게 교리를 배운 뒤 1857년 5월 31일 제주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였다. 그는 제주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예비 신자들의 세례를 위해 그들과 함께 육지에 자주 다녔는데, 여비 마련을 위해 거제도에 갔다가 체포되어 통영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장살형을 받아 수없이 많은 곤장을 맞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이듬해 1월에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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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평 성지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9. 9. 25. 08:30
황사평 성지 - 2 (190820) * 황사평 성지 - 3 ➽ - 3 황사평 성지는 1901년 신축교안(辛丑敎案) 때 희생된 무명의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당시 조선 왕실의 재정 확보를 위해 파견되어 온 봉세관이 과다한 조세 징수로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고, 여기에 조세 중간 징수 관리자로 이용된 일부 신도들로 인해 교회는 많은 오해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미신 행위 등 신앙에 위배되는 지역 풍습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자주 주민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무리한 전교 활동과 왕실 조세 정책에 저항한 민회(民會)가 1901년(신축년)에 대정현(모슬포)에서 열리면서 민란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700여명의 신자들과 양민들이 관덕정등지에서 피살되었는데, 이를 '신축교안'이라 한다, 신축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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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 성지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9. 9. 17. 08:30
용수 성지 - 2 ➽ - 1 (190820)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 상해항을 출발하여 서해 바닷길로 귀국하다가 표착한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귀국하던 중 큰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였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은 고국에서의 감격 어린 첫 미사를 용수리 해안에서 봉헌하고, 배를 수리한후 이곳을 떠나 전라북도 금강하류 나바위로 상륙하여 귀국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경기도 용인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1846년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해 9월 새남터에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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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은총의 동산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9. 9. 10. 08:30
새미 은총의 동산 - 2 (190820) * 새미 은총의 동산 - 3 ➽ - 3 1950년대 후반에 성 골룸반 외방선교회 소속 사제 패트릭 맥글린치(임피제) 신부는 한림 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면서, 그 당시 가난한 제주 농민들을 돕기 위하여 외국의 원조를 얻어 한림읍 금악리에 넓은 목장을 확보하고 성 이시돌 농촌 산업 개발협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특히 축산업을 발전시켜 제주도뿐 아니라 한국의 목축업에 많은 기여를 했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여러 가지 종교사업과 사회사업을 펼쳤다. 이 장소의 옛 이름을 딴 '새미’(SAEMI) 은총의 동산은 라틴어에서 거룩함, 영혼, 복음, 중개자, 하느님의 모습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예수님의 공생활 테마들과 십자가의 길 14처를 동상으로 제작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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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순교 터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9. 9. 3. 08:30
관덕정 순교 터 - 2 ➽ - 1 (190819) 1886년 한불 조약(韓佛條約)을 계기로 조선 땅에서는 공식적인 박해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는 부패한 관리와 완고한 유생들과 천주교인들과의 층돌이 결국에는 박해라는 양상으로 바뀌었는데, 그중 하나가 1901년에 발생한 제주도 신축교안(辛丑敎案)이다. 지방 관리와 기득권을 주장하는 토호 세력 등의 결탁으로 유도된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새로운 조세 정책에 불만을 가진 백성들의 민란(이재수의 난)으로 출발했으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란군은 공격 대상을 천주교로 돌렸다. 관덕정(觀德亭)은 본래 조선 세종 때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군사들의 연무장에 세운 정자였는데, 제주 신축교안 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 관덕정에서 민란군에게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