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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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여 행 2022. 1. 28. 08:30
오죽헌 (烏竹軒)주 소 :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174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가 태어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양식의 목조건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되었다. 보물 제165호이다. 자경문(自警門) 문성사(文成祠) 오죽헌(烏竹軒) - 보물 제 165호 율곡매(栗谷梅) - 백암산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조계산 선암사 선암매(仙巖梅)지리산 화엄사 홍매(紅梅)와 함께 4대 매화(梅花)로 천연기념물 제 484호이다.안채 운한문(雲漢門)어제각(御製閣) 바깥채 율곡기념관(栗谷記念館)입지문(立志門) 향토민속관(鄕土民俗館)강릉시립박물관(江陵市立博物館)율곡인성교육관(栗谷人性敎育館) (211028) (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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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공소믿 음/성지순례(167곳) 2022. 1. 20. 08:30
행정 공소 주 소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행정리 203-5 홈 피 : http://www.hjgongso.or.kr 행정 공소는 본디 외교인촌이었으나, 1924년경에 옹기점 마을 회장이었던 김세중 라파엘이 일가를 데리고 양평에서 이주하여 옹기 교우 마을(점촌)을 이루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걸쳐 공소 회장을 맡으며 전교에 힘썼고, 한때는 마을의 50세대 전체가 옹기를 굽는 교우들이었다. 박해 시대 이래 교우들은 오지그릇이나 숯을 구우며 숨어 살았는데, 행정 공소는 그러한 우리 교회사를 상징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행정 공소는 금광리, 도문, 학야, 산두 공소와 더불어 영동 지역의 주요 공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행정 공소는 처음에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1958년 신자들이 힘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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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 터믿 음/성지순례(167곳) 2022. 1. 4. 08:30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 터 주 소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 47-3번지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는 1940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고 1947년 입국, 1949년 묵호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신자들이 배를 마련하여 피난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라 신부는 “양들을 버리고 목자가 혼자 도망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는 공산군이 쳐들어오자 당시 전교 회장의 집 뒷방으로 피신하여 몰래 미사를 봉헌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던 중 라 신부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며 끌려갔다.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묵호에서 강릉으로 이송되던 중, 공산군에 의해 밤재굴에서 총살당하였다. 라 신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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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당동 성당믿 음/성지순례(167곳) 2019. 8. 6. 08:30
임당동 성당 - 개정 증보판('19.6.30)에서 추가 주 소 :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159 홈 피 : http://www.idd.or.kr 주보성인 : 성 골롬바노 1921년 금광리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923년 주문진으로 이전하였으나 1929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금광리로 옮겼다가 1934년 강릉 임당동으로 본당을 옮겼다. 1951년 현재 위치의 대지를 매입하여 1955년 10월 성당을 신축하였으며 1974년 본당 명칭을 강릉 본당에서 임당동 본당으로 바꾸었다. 2010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57호로 지정되었다. 십자가의 길 ☞ (160623) 1866년 박해 이후로 신자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져,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영동지방까지 피신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토기업으로 근근히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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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리 공소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3. 13. 08:30
금광리 공소 - 2 ➽ - 1 (180221) 금광리 공소는 1887년에 설립 된 곳으로 영동 지역 천주교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 천주교가 적극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계기는, 1866년 시작되어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계속되었던, 한국교회사의 4대 박해가 운데 하나였던 병인박해라고 할 수 있다. 강릉 지방에 천주교 공소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19세기 말경으로, 구정면 금광리와 내곡동 등지에 천주교인들이 이주하여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은밀하게 전교를 하고 있었다는 기록과, 현존하고 있는 금광리 공소 현판에 ‘1887년 창립'이라 고 적혀 있는 것과 부합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교우 들이 강릉에 이주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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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대도호부 관아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3. 6. 08:30
강릉 대도호부 관아(江陵 大都護府 官衙) - 2 ➽ - 1 (180221) 관아는 넓게는 관원들이 모여 나랏일을 보던 곳 전체를 의미하지만 좁게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업무를 보던 곳을 말한다. 강릉부 관아는 조선 시대 강릉에 있던 현재의 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사법의 기능도 함께하여 죄인을 심문하거나 옥(獄)에 가두어 놓았다는 것이 현재와는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강원도 지방, 특히 춘천교구내 영동 지역의 순교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나 있는 강릉 지역의 순교자는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심 스테파노 한 명뿐이다. 하지만 현재의 도청과 같은 곳인 감영뿐만 아니라 관아에서도 신자들이 심문을 받고 순교한 것이 여러 연구 결과 및 구전, 순교자 증언록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