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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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어산 은하사조계종/그외 말사 2022. 10. 26. 08:30
신어산 은하사 (神魚山 銀河寺) 주 소 :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 882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로 전하는 설에 따르면 신어산 서쪽에 인도불교가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이 절을 지었으며, 동쪽에 동림사(東林寺)를 지어 구야국의 번영을기원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22년 (1644년)에 복원하면서 절 이름을 서림사라하고 별칭으로 동림사라고도 하였다. 은하사란 사명은 약 200여년 전에 중수하면서 불리어져 오고 있다. 보제루(普濟樓) 범종루(梵鐘樓) 대웅전(大雄殿) 삼성각(三聖閣) 명부전(冥府殿) 전통전수관 응진전(應眞殿) (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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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신석복 묘 - 2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20. 9. 16. 08:30
복자 신석복 묘(개정 증보판('19.6.30)에서 삭제) - 2 ➽ - 1 (200610) 복자 신석복 마르코는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서 살았다. 명례 지방은 일찍이 피난 교우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신석복과 그의 가족들은 이들의 권면으로 신자가 된 듯하다. 그의 형제들은 신석복이 순교할 때는 신자가 아니었고 훗날 모두 입교하였다. 신석복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병인 치명 사적’ 에 따르면 포졸들은 신석복이 신자인 것을 알고 동네로 잡으러 왔었다. 그러나 그가 장사 나가고 없었기에 포졸들은 며칠을 기다린 뒤 돌아오는 신석복을 길에서 체포한 것이다. 신석복은 대구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심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지안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신석복은 18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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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20. 9. 15. 08:30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 - 2 ➽ - 1 (200610)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는 1811년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부유했으며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부친 박민혁과 형제들은(대붕, 대홍, 대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병인박해를 만나게 된다. 병인박해 때는 가족 모두가 피신하여 잡히지 않았으나, 1868년 무진박해 때 박대식은 조카인 박수연과 함께 붙잡힌다. 박대식은 경상 감영에서 연일 배교를강요 당하며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1868년 8월 27일(음) 조카 박수연과 함께 참수 치명한다. 당시 박수연은 예비 신자 신분이었다. 박대식의 가족들은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 와 선산에 모시려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의 외인들이 반대하자 하는 수 없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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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신석복 묘믿 음/그외 성지,성당 등 2016. 9. 29. 08:30
복자 신석복 묘 - 개정 증보판('19.6.30)에서 삭제 주 소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 248 (진영 성당 공원묘지) 관 할 : 진영 성당 2014년 시복된 신석복 마르코는 1828년 밀양의 명례에서 태어나 병인박해(1866년) 때 포졸에게 체포되어 밀양으로 압송된 후 대구로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나 “저를 놓아주신다 하여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라고 당당히 대답하였다. 결국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순교자의 아들인 신영순 이냐시오가 부친의 유해를 찾아왔지만 지방 유지들과 신씨 문중의 반대로 고향 땅에 안장할 수 없어 낙동강 건너 한림정 뒷산 노루목에 안장했고, 1975년 진영 본당 신자들에 의해 본당 공원묘역으로 이장되었다. * 복자 신석복 묘 - 2 ➽- 2 * 진영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