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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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여 행 2018. 9. 2. 08:30
전주 경기전(全州 慶基殿) 주 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진전(眞殿)으로 태종 11년(1410년)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完山 - 全州), 계림(鷄林 - 慶州), 평양(平壤) 세 곳에 창건하였는데 세종 24년(1442년)에 완산의 어용전을 경기전이라고 정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년)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 중건하였다. 1991년 1월 9일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하마비(下馬碑) 홍살문(紅箭門) 정전(正殿) - 경기전의 본전으로, 태종 11년(1410년)에 지었으며 2008년 12월 1일 보물 제1578호로 지정되었다. 예종대왕 태실 및 비(睿宗大王 胎室, 碑) - 예종대왕의 태(胎)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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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317호 조선 태조 어진국 보 2018. 8. 18. 08:30
국보 제 317호 조선 태조 어진 (朝鮮 太祖 御眞)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91-5 (경기전 어진박물관) 지정일 : 2012년 06월 29일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로 가로 150㎝, 세로 218㎝이다. 태조의 초상화는 한 나라의 시조로서 국초부터 여러 곳에 특별하게 보관되어 총 26점이 있었으나 현재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초상화 1점만이 남아있다. 이 초상화는 임금이 쓰는 모자인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용상에 앉아있는 전신상으로 명나라 태조 초상화와 유사하다. 곤룡포의 각진 윤곽선과 양다리쪽에 삐져나온 옷의 형태는 조선 전기 공신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바닥에 깔린 것은 숙종 때까지 왕의 초상화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높게 올라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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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국 보 2018. 8. 11. 08:30
국보 제 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900 (국립 전주박물관) 지정일 : 1966년 07월 26일 마한의 왕궁이 있던 자리로 알려진 터에 있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을 보수하기 위해, 1965년 해체하면서 탑을 받치고 있던 기단부와 1층 지붕돌 윗면에서 발견된 유물들이다. 발견된 유물들은 백제에서 통일신라에 이르는 시기의 것들로 판단된다. 기단부 윗면에 品자형으로 뚫린 3개의 구멍 중 동쪽에서는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 금동여래입상 1구와 불교 의식 때 흔들어 소리를 내던 청동요령 1개가 나왔고, 북쪽구멍에서는 향류(香類)가, 또 다른 구멍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1층 지붕돌 윗면 중앙에 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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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자산 성지 - 3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7. 3. 08:30
치명자산 성지 - 3 파티마 성모 동산 장막 성당 옹기가마 경당 순교자 가족 동상 (180418) * 치명자산 성지 - 4 ➽ - 4 이곳은 예부터 승암산 혹은 중바위산이라 불렸는데, 1801년에 순교한 복자 유항검의 가족들을 합장한 묘소가 있는 곳으로, 치명자산 또는 동정 부부 이 루갈다를 추앙하여 루갈다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는 1784년 세례를 받아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처 신희, 동정 부부로 순교한 큰아들 유중철 요한과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 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 마태오 일곱 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유항검은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 지방에서 제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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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순교 성지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6. 26. 08:30
전동 순교 성지(전동 성당) - 2 ➽ - 1 (180418) 전동 성당을 세운 부두네 신부도 처음에는 이곳이 순교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성당을 세웠지만, 이곳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처음에는 전주 오목대에 성당을 세울 계획을 세웠는데, 유림들과의 마찰을 우려한 뮈텔 주교가 옮길 것을 건의해서 지금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기 때문이다.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1791년) 때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진산 사건으로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과 김유산 등이 순교한 곳이자 유항검의 아우 윤지헌이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 주교에게 서양의 큰 배를 조선에 몰고 와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