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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 (金剛山 乾鳳寺)
주 소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37
홈 피 : https://www.geonbongsa.org/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新興寺)의 말사로 신라 법흥왕 7년(520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하였다. 경덕왕 17년(758년)에 발징(發徵)스님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만일염불회의 시초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重修)하고 서봉사(西鳳寺)라하였으며 공민왕 7년(1358년)에 나옹(懶翁)선사가 중수하고 다시 건봉사(乾鳳寺)로 개칭하였다.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오대산 중대(中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의 적멸보궁과 함께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태조산 도리사(桃李寺), 비슬산 용연사(龍淵寺)를 합쳐 8대 적멸보궁이라고도 한다.
돌확 - 곡식을 빻거나 찧는 데 쓰는 도구이며, 절구의 일종이다.
금강갑계발상지비(金剛甲稧發祥地碑), 금강갑계발기취지문비(金剛甲稧發起趣旨文碑), 능파교신축비(凌波橋新築碑)
500여년 된 팽나무
불이문(不二門)
범종각(梵鐘閣)
극락전(極樂殿)
적멸보궁(寂滅寶宮)
건봉사에 봉안된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치아사리(眞身齒牙舍利)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선덕왕5년(636년)에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문수보살전에 기도 끝에 얻은 진신사리 100과 중 일부다. 자장율사는 643년에 귀국하여 이 사리들을 5대 적멸보궁(통도사, 월정사, 법흥사, 정암사, 봉정암)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인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통도사에 난입하여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를 탈취해 갔던 것을 1605년 사명대사가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되찾아 왔다.
사명대사는 이 불사리가 재차 왜적의 침탈 표적이 될 우려가 있으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을 중수하여 사리를 다시 모시고, 그 가운데 치아사리 12과만을 맨 처음 의승군을 규합하여 인연이 있는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석가여래치상탑비) 건봉사에서는 경종4년(1724년) 사리탑을 세워 이 진신치아사리를 다시 봉안하였다. 그런데 사명대사에 의해 봉안된 건봉사 진신치아사리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986년 6월 사리탑이 도굴되면서 부터다. 당시까지만 해도 건봉사는 민통선 안에 위치하여 일반인의 출입이 어려웠고, 그 만큼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전문 도굴범들이 사리탑을 열어 사리함과 사리를 절취해 갔다. 하지만 사리를 돌려보내라며 꾸짖는 부처님의 꿈을 며칠 간 계속 꾼 도굴범들이 결국 사리를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되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총 12과 중 8과만 회수되었는데, 나머지 4과의 행방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건봉사에서는 1966년 8과 중 3과를 이 곳 적멸보궁 사리탑에 다시 봉안 하였고, 나머지 5과는 일반신도들이 친견할 수 있도록 사리함을 별도로 만들어 종무소안 염불원에 모셔왔던 것을 2022년 1월 15일 염불원 맞은편 보안원(普眼院)을 보수하여 친견장으로 이운(移運), 봉안(奉安)하였다.독성각(獨聖閣)
산신각(山神閣)
왕소나무
능파교(凌波橋) - 길이 14.3m, 폭 3m, 다리 중앙부 높이 5.4m의 다리로 보물 제 1336호이다.
봉서루(鳳棲樓)
십바라밀 석주(十波羅蜜 石柱)
십바라밀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10단계 수행을 말한다.보안원(普眼院) -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친견장
대웅전(大雄殿)명부전(冥府殿)
만일염불원(萬日念佛院)
연지(蓮池)
장군샘
옛 스님들 말씀과 전설에 의하면 이 곳 약수는 무색 무미 무취의 광천약수로 유명하며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을 위해 의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께서 전국의 승려들을 건봉사에서 훈련시키면서 이 물로 몸을 씻게하고 음용토록하여 각종 질병을 퇴치했다는 기록이 있다.연화교(蓮華橋)
부도전(浮屠殿)
만해 한용운 기념관, 사명당 의승병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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