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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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8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 보 2018. 9. 8. 08:30
국보 제 8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4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이다. 낭혜화상은 무열왕의 8세손으로 애장왕 2년(801)에 태어나 열세 살 되던 해에 출가,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문성왕 7년(845)에 귀국하여 당시 웅천(지금의 보령)에 있던 오합사(烏合寺)의 주지가 되었다. 이 절에서 선(禪)을 널리 알리고 점점 크게 번성하게 되자, 왕은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으며, 진성여왕 2년(888)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낭혜’라 하고, 탑 이름을 ‘백월보광’이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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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299호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국 보 2018. 9. 1. 08:30
국보 제 299호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新元寺 盧舍那佛 掛佛幀)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8, 신원사 지정일 : 1997년 09월 22일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노사나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길이 11.18m, 폭 6.88m 크기의 이 괘불은 노사나불이 단독으로 중생을 설법하는 모습으로,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다. 단독으로 그려진 노사나불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녹색과 홍색, 분홍색 등을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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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298호 갑사 삼신불 괘불탱국 보 2018. 8. 25. 08:30
국보 제 298호 갑사 삼신불 괘불탱 (甲寺 三身佛 掛佛幀)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갑사 지정일 : 1997년 09월 22일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진리를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그림은 길이 12.47m, 폭 9.48m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 구도를 이루고 있다. 맨 윗부분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묘사되어 있고, 맨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있다. 가운데부분의 비로자나불은 등뒤로 광배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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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다락골 성지 - 3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8. 21. 08:30
청양 다락골 성지(새 터, 줄무덤) - 3 대성당소성당 십자가의 길 ☞ 십자가의 길 ☞ (180718) * 청양 다락골 성지 - 4 ➽ - 4 다락골의 천주교 전파는 신해박해(1791년)를 피해 서울에 살던 최인주(최양업 신부의 조부)와 그의 모친(내포의 사도 이존창 누이)이 고향인 이곳에 피신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최양업 토마스(1821년) 신부와 그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년) 성인이 탄생하게 된다.또한 기해박해(1839년)때, 모방 나 신부와 샤스탕 정 신부가 마지막으로 피신해 숨어 지내며 천주교를 전파하다, 앵베르 범 주교님의 편지를 받고 홍성관아에 자진 자수함으로써 조선 교회 교우들을 위해 착한목자로서 순교를 받아들인 곳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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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 작은재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8. 15. 08:30
산막골, 작은재 - 2 (180718)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들 가운데 천방산 산막골(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은 선조들이 1839년 기해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인적 없는 산간벽지에 숨어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곳이다.특히 이곳은 페롱신부가 1858년부터 사목 중심지로 삼은 곳으로 주목된다. 그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50년 프랑스 세즈에서 서품을 받고 1856년 한국에 도착하여 경상도 서북부 지방을 맡아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858년 9월 24일과 25일, 1859년 9월 27일 등 총 6통의 편지를 이곳 산막골에서 작성헸다.또한 이곳은 황석두 루카 성인 일가가 충북 연풍에서 이주해 병인박해가 있기 전 10여 년 동안 살던 곳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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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리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8. 14. 08:30
지석리 - 2 (180718) * 지석리 - 3 ➽ - 3 지석리는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성 손선지 베드로와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의 고향이다. 어려서 입교한 손선지는 열심한 신앙으로 이미 16세 때 샤스탕신부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병인박해 때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했다. 또한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난 정문호 성인은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했는데 교우들뿐만 아니라 외교인들에게조차 깊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 때에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았다. 이들 두성인은 팔이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가는 혹독한 고문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고, 형장에서도 오히려 축복의 순간을 맞는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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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치골 성모 성지 - 2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8. 7. 08:30
수리치골 성모 성지 - 2 십자가의 길 ☞ 성모당 성모성심회 발족 집 터 (180718) * 수리치골 성모 성지 - 3 ➽ - 3 수리치골은 박해 시대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로 성모성심회라는 신심 단체가 조직되었던 성모 신심 발상지이자 공주 지방의 신앙 형성에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갖는다 하겠다. 1845년 10월 성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한 페레올 고 주교 와 다블뤼 안 신부가 이곳에 은거하며 전교하던 중 1846년 11월 2일, 성모 성심께 한국과 한국 교회를 봉헌하며 오두막집에서 몇 명의 신자들을 모아 성모성심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4일 뒤 그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 ‘승리의 성모 대성당' 데쥬네트 신부(1836년 성모성심회 창설)에게 편지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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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못 순교 성지 - 3믿 음/성지순례(167곳) 2018. 8. 1. 08:30
갈매못 순교 성지 - 3 ➽ - 1 (180614) 갈매못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성 다블뤼 안 주교, 성 오매트르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 장주기 요셉과 다섯 유명 순교자, 그리고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처참히 순교하신 곳으로 한국 교회의 순교사를 생생하게 증거하는 곳이다. 다블뤼 주교는 스스로 체포될 것을 결심한 뒤 주변에서 사목 활동을 하시는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에게 자수를 권고하는 편지를 보내고 붙잡힌다. 이어 편지를 받은 두 분도 자진해서 잡히시어 서울로 압송되는데 이때 황석두 루카도 압송되는주교님께 간청하여 함께 압송되었고 장주기 요셉도 함께 처형당하길 요청하여 다섯 성인이 이곳 갈매못에서 처형되었다. 처형 후 삼 일 동안 효시한 뒤 황석두 루카의 유해는 가..